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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감상문

(스포주의) 블랙미러 시즌2 2화 '화이트 베어' - 역지사지로 벌을 준다면

Black Mirror S2E2: White Bear (2013) ❘ Image via IMDb ❘ © Netflix

 

 

 

🎬 에피소드 요약: “White Bear” (화이트 베어)

  • 한 여자가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으로 그녀를 촬영한다.
    가면 쓴 남자가 그녀를 쫓아오며 죽이려한다. 도망 끝에 이 모든 건 쇼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그녀는 아동 살인 사건의 가해자였고, 매일 기억을 지운 채 같은 처벌을 반복당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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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았을까?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관람객’이었다. 그녀의 고통과 공포는 하나의 쇼였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소비하는 것이 역할이었다.
이 사회에서 그녀는 이미 인간이 아니었고, 벌을 받는 ‘구경거리’였다.

 

Q. 이 처벌 방식은 정당한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역지사지로 벌을 주는 것이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국가 인력과 자원이 매일 투입된다. 효율만 본다면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에피소드 내 사회는 효율보다 ‘대중의 분노와 복수심’을 만족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Q. 기술이 만든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공항에서, 면접장에서, 심지어 사적인 모임에서도 ‘기억 재생’은 보편적인 절차가 된다.

개인 정보는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고, 사람들은 계속 기록된다. 잊혀질 권리는 없다. 기술을 거부하면 사회에서 배제된다.

기술이 ‘있음’과 ‘없음’으로 사람을 나누는 순간, 그 사회는 이미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편리함은 불평등과 감시를 동시에 키운다. 

 

Q. 제목 ‘화이트 베어’의 의미는?

화이트 베어(White Bear)는 피해 아동이 아끼던 곰 인형의 이름이었다.
이 인형은 사건의 상징이 되었고, 처벌 구역의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그녀는 매일 그 이름 속에서 벌을 받고, 매일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 

이건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대중의 분노와 복수심’을 상품화한 자본주의 콘텐츠였다.
그녀의 고통은 매일 반복되지만,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과 이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처벌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소비되며 유지된다.
결국 이 사회의 가장 큰 승자는 분노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일 것이다.

 

 

내 좌우명은 역지사지다.
그런데 역지사지로 형벌을 주는 건 처음 봤다. 통쾌했다.
우리 사회에 대입해 보니 몇몇 인물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그런 힘이 주어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