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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감상문

(스포주의)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 - 에스티처럼 행동하길

그리고 베를린에서 (2020) ❘ Image via IMDb ❘ © Netflix

 

 

 

🎬 작품 요약: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

    • 방영: 2020, 넷플릭스 오리지널
    • 시즌: 리미티드 시리즈 (총 4화)
    • 줄거리: 사랑 없는 결혼과 엄격한 규율 속에 갇힌 에스티. 
      그녀는 뉴욕 브루클린의 하레디 유대교 공동체를 떠나 자유를 찾기 위해 베를린으로 도망친다.
      낯선 도시에서 음악적 재능을 깨닫지만, 남편과 그의 사촌이 뒤쫓아온다. 
      에스티는 음악 대학 오디션에 합격해 과거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한 삶을 향해 나아간다.
    • 시청 가능 OTT(한국 기준): 넷플릭스 '그리고 베를린에서' 보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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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화냐?

그렇다. 원작은 데보라 펠드먼(Deborah Feldman)이라는 여성이 쓴 회고록

『Unorthodox: The Scandalous Rejection of My Hasidic Roots』 (2012)을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Q. 종교도 실화냐?

그렇다.

주인공이 속한 공동체는 실제로 뉴욕 브루클린에 존재하는 초정통파 유대교 분파, 사트마르 하시디즘(Satmar Hasidism)이다.

여성은 결혼·출산·가정 내 역할에만 충실해야하며,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이 공동체는 지금도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즈버그, 퀸즈, 이스라엘 등지에 대규모로 존재하며, 추산 인구만 약 10만 명 이상에 달한다.

즉, 드라마 속 억압적인 관습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Q. 남자 머리도 실화냐?

그렇다.

남성들이 귀 옆 머리카락(파이오트, Payot)을 길게 기르는 전통은 실제다.

이는 구약 「레위기 19:27」의 “머리 가의 머리털을 깎지 말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지킨 결과다.

그래서 하시디즘 남성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더라도 귀 옆머리만큼은 자르지 않고 곱슬처럼 늘어뜨리거나 동그랗게 말아둔다.

 

추가로 남자들이 지키는 규율은 3가지가 더 있다.

  • 항상 검은색 긴 코트(베키셰, Bekishe)와 모자를 착용한다. 안식일에는 모피 모자(슈트라이멜, Shtreimel)를 쓴다.
  • 하루 세 번 이상 기도하고, 토라(율법) 공부가 생활의 중심이다.
  • 세속 교육이나 문화는 최소화하며, 공동체 밖 사람들과의 접촉을 엄격히 제한한다.

 

사트마르 하시디즘 남성들의 전통 복장 — 긴 검은 코트와 모자, 옆머리를 기른 파이오트(Payot). Image via Wikipedia ❘ © CC BY-SA

 

Q. 여자 머리 미는것도 실화냐?

그렇다.

다만 성경에 직접적으로 “머리를 밀라”는 구절이 있는 건 아니다.

대신 랍비 해석(탈무드, 하라카)에 따라 결혼한 여성은 머리를 공개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 여기서 말하는 탈무드는 경전이지, 우리가 아는 ‘탈무드 우화집’과는 다르다.)

 

사트마르 공동체는 이를 가장 엄격하게 지켜, 결혼 직후 여성의 머리를 완전히 밀고

이후에도 기르지 못하게 짧게 유지하거나 항상 가발·스카프로 가린다.

 

추가로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규율이 더 있다.

  • 긴 소매, 긴 치마 등 몸을 가리는 보수적인 복장만 입는다.
  •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것이 금지된다. (여성의 목소리는 유혹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
  • 결혼·출산·가사 노동이 가장 중요한 역할로 강조되며, 대외활동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종교·공적 활동은 남성에게만 허용된다.

 

Q. 왜 하필 베를린일까?

영문제목은 'Unorthodox(언오독스)', 한국제목은 '그리고 베를린에서'.

둘 다 직설적이지만 방향이 다르다.

 

원제는 주인공의 정체성에, 한국제는 그녀가 도착한 장소에 집중한다.

그런데 왜 하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일까?

 

브루클린은 억압과 규율의 상징이라면, 

에스티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무대가 바로 베를린이라는 점에서, 베를린은 자유와 해방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베를린은 역사적으로도 상징적인 도시다.

과거에는 동·서독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으로 억압과 통제를 상징했지만, 지금은 장벽이 무너지고 자유와 변화의 도시가 되었다.

 

에스티가 브루클린이라는 “내면의 장벽”을 넘고 도착한 곳이 베를린이라는 점은,

개인의 서사와 도시의 역사적 상징이 겹쳐진다.

 

결국 '그리고 베를린에서'라는 제목은 단순한 장소 표시가 아니라,

억압에서 해방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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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 이끌려 보게 된 시리즈.

보는 내내 다큐인가, 각본인가 헷갈릴 정도였다.

 

흡입력 있는 연기에 빠져 시리즈를 끝까지 보고 나서 검색해봤다.
실화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종교였다. 충격이었다.

 

여성은 아직도 도구로만 취급된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의 해석이 와전되어, 악법처럼 굳어져버린 것이다. 안타깝다.

 

아직도 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해지고 속이 답답해졌다.